"할아버지,
사람은 사랑없이도 살 수 있어요?"
라는 주제로 이야기를 시작하는 소설 자기앞의 생. 주인공 모모의 물음에 대한 답은 소설의 끝에 나온다
주인공 모모가 10살이 넘도록 진짜 부모가 누구인지 모른채 로자 아주머니의 집에서 지내면서 겪는 이야기이다. 사건의 스펙타클은 없지만 스토리를 따라 흐르는 주인공 모모의 의식의 흐름속에서 어떤 스펙타클을 느낄 수 있다. 책에 등장하는 따뜻한 이웃들을 보면서 슬프지만 행복한 감정을 느낄 수 있는 소설이다.
나는 집으로 돌아가기가 두려웠다. 그즈음 로자 아줌마는 보기에 딱할정도로 몸이 안 좋았고 나는 조만간 그녀가 나를 혼자 남겨두게 될 것을 알고 있었다. 나는 계속 떠오르는 그 생각때문에 겁이 나서 가끔씩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곤 했다. 어느 정도냐면 상점에 가서 아무거나 큰 물건을 하나 훔쳐서 붙잡혀가고 싶었다. 아니면 어떤 큰 건물에 들어가서 기관총을 쏘며 마지막까지 저항을 해볼까. 하지만 아무도 내게 관심을 갖지 않으리라는 걸 알고 있었다.
현실이 꿈이길 간절히 바라고 지금 마주한 현실에서 충동적으로 탈출해보리고싶은 그런 마음. 사람이 받아들이기 버거운 상황을 마주하면 그게 ‘현실’이라는 걸 부정하고 도망가고 싶어지는데, 하물며 10살 모모는 한참 아이인데 서로가 필요한 존재라고 여기던 로자 아줌마를 곁에 두고 얼마나 힘들었을지.. 그 상태가 잘 나타나있다.
조만간 닥쳐올 미래를 생각해두어야 했다. 나는 밤마다 미래를 꿈꾸곤 했다. 누군가와 바닷가에서 여름휴가를 보내는 꿈, 나를 기분좋게 하는 어떤 사람. 그렇다, 나는 가끔 로자 아줌마를 배신하곤 했다. 하지만 그것은 죽고 싶어질 때 머릿속으로만 그랬을 뿐이다. 나는 어떤 희망을 가지고 그 여자를 바라보았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희망이란것에는 항상 대단한 힘이 있다. 로자 아줌마나 하밀 할아버지 같은 노인들에게조차도 그것은 큰 힘이 된다.미칠 노릇이다.
누군가를 향한 마음도 ‘애정’이나 사랑’만이 아닌 그에 반하는 반대적인 마음도 같이 가지고 있을 수 있다. 인간이기때문에. 누군가를 지키고 싶은 동시에 떠나고 싶은 양면의 마음. 제 3자로부터 내가 선택할 수 있는 다른 희망을 볼 때 얼마나 달콤할지.. 그래서 모모가 로자이줌마를 ‘엄마’처럼 너무나 사랑했기 때문에 잠깐의 희망에 유혹되지않고 끝까지 그녀를 떠나지 않은 모습이 아플만큼 애잔했다.
하밀 할아버지가 없었다면 나는 뭐가 됐을지 모르겠다. 내가 아는 모든 것은 다 하밀 할아버지가 가르쳐 준 것이다. 할아버지는 어렸을 때 삼촌을 따라 프랑스에서 왔는데 할아버지가 아직 어릴 때 삼촌이 돌아가셨지만 스스로 일어서는데 성공했다. 요사이에야 점점 바보가 되어가고 있지만, 그것은 자신이 그렇게 오래 살게 되리라는 것을 미리 알지 못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모모는 나이에비해 성숙하고 예민하고 인간에 대한 연민이 있어 알고보면(?) 다정한 아이이다. 사실 하밀 할아버지같은 사람에게라면 그렇지않은 사람일지라도 다정해질 수 있겠다싶지만..
친절한 이웃이 주변에 있고 친 혈육보다 나은 이들을 곁에 두었던 그가 부럽기도 했다. 한낱 꼬마에게 진심과 애정으로 세상에 대해 이야기해 줄 수 있는 어른을 갖는건 축복이라고 생각한다.
일러스트 버전 자기앞의 생으로 좀 더 풍성하게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